영화 속의 소도구는 무엇을 말하는가? - 꼼꼼하게 읽기(1)

돌격앞으로 0 144

최근에 <블러드 심플>(1984)을 봤다.

이미 비디오테이프, DVD, 블루레이로도 봤지만 '스크린'으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큰 화면으로 보니 뭔가 제대로 봤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코엔 형제의 데뷔작인 이 영화에 대한 글은 구글링을 조금만 해봐도 차고 넘친다.

이상한 것은 그렇게 열광적으로 쓴 글 중에 정작 얻을게 별로 없다는 점이다.

영화를 보고 흥분했다는 감상은 있지만 시네마틱한 체험을 일으킨 요인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침묵한다.

심지어 영화의 줄거리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글도 수두룩하다.

비단 이 문제가 관람자에게만 있는 것 같지는 않다.

 

1998년에 리마스트링 된 이번 버전을 보다가 깜짝 놀랄만한 자막을 봤다.

영화 초반에 사립 탐정 비셔(M. 에밋 윌쉬)가 술집 사장 줄리안 마티(단 헤다야)를 만나는 장면에서 은도금 라이터를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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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터 중앙에는 "Loren"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고 그 주위로 로프 장식이 있다. 라이터 측면에는 "Elks Man of the Year"라는 글자도 보인다.

영화관에서 이 부분에 내가 본 자막은 연인이었는데 번역가가 필기체로 새긴 "Loren"“Lover”로 잘못 본 것일 거다.

라이터는 <블러드 심플>에서 결정적인 소도구인데 "Loren"“Lover”로 오독을 해놓으니 영화를 본 사람 중에 부정한 연인을 올가미로 잡으려는 것을 의미한다는 둥, 썩은 생선 밑에 놓인 라이터를 보고 사랑이 부패라는 것을 상징한다는 둥 별별 희한한 해석이 쏟아진다.

 

사실 사립탐정의 이름 "Loren Visser"는 영화 속에서 한 번도 불리지 않는다. 영화 스크립터에만 나오는 이름인데 번역자가 대본을 조금이라도 챙겨봤다면 이런 실수는 하지는 않았을 게다.

 

그러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영화를 너무 단순하게 보고 있거나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보고 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

이 생각은 <블러드 심플>의 주제와도 정확히 일치한다.

알다시피, 영화 제목 “blood Simple”은 대실 해밋의 하드보일드 소설 <붉은 수확>에서 따온 것이다. “사람이 누군가를 죽이고 나면 그의 머리는 물렁해진다. 블러드 심플이라고 해밋은 쓰고 있다.

조엘 코엔은 <타임 아웃>과의 인터뷰에서 살인을 저지른 사람의 심리 상태를 묘사한 것인데 simple은 속어로 crazy라는 의미가 있다”. 즉 살인 후 혼란과 두려움으로 미쳐버리기 직전의 범인의 상태를 말하는 제목이다. 영화에서도 등장인물들이 살인 후 머리가 단순해지다 보니 상황 파악이 제대로 안되어 바보 같은 상황에 빠진다.

영화는 눈앞에 놓인 증거들을 못 보거나 재조합 후 해석에 실패하는 상황을 그리고 있는데 bloodblind를 대체하고 싶을 만큼 영화 속 인물들은 눈이 먼 상태다.

맹목적인 상황에 빠진 인물을 적절하게 표현해주는 영화 속의 대사가 있다.

비셔가 마티를 살해하고 마티의 사무실에서 빠져나가면서 하는 말.

“Who looks stupid now.(이제 누가 바본지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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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는 그 말을 내뱉은 비셔라는 것을 카메라는 증명한다. 어떻게?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라이터를 살인 현장의 물고기 밑에 놓아두었으니까.

그 상황을 못 본 눈 뜬 장님 비셔.

 

동일한 영화를 거듭 본다는 것은 이제까지 못 봤던 것들을 다시 깨닫는 과정이다. 오랜 시간 동안 <블러드 심플>을 보면서 내가 미쳐 못 봤던 것들을 이번 기회에 다시 보게 되었다.

그 부분에 대해 글을 써보고 싶다.

 

이왕이면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살인 현장의 증거품을 가지고 상황을 재구성하듯이 나는 소도구를 중심으로 이 영화를 재구성하고 싶다.

즉 라이터, 알약, 선풍기, 전화기, 핑거 스프린터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머리가 물렁해졌다. 본격적인 글은 다시 올리겠다. 블러드 심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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