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꼼하게 읽기(5-2) - 영화 속의 소도구는 무엇을 말하는가?

붕날라차뿌까 0 182

앞의 글에서 이어집니다.


--------------------

보론: 천정용 선풍기와 운명을 나타내는 소도구들


영화의 내적 필연성과 무관하게 외부에서 갑작스럽게 상황이 전개되는 것 역시 운명성과 연관된다.

<블러드 심플>과 관련해서 본다면 다음과 같은 것을 들 수 있겠다.


a941ebcac4d6f68f0b7b76a78d3f7c0a_1575345342_9172.jpg 

레이가 밀린 주급을 받으러 마티의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레이는 마티의 이름을 부르며 자리에 앉아있는 레이에게 다가선다.

그때 마티의 발에 차인 권총에 불이 뿜고 탄환은 아슬아슬하게 마티 옆의 나무 칸막이를 뚫는다.

권총에 장전된 세 발의 탄환 중 가장 어이없게 발사된 장면이기도 하다.

시나리오상 이 장면은 애비 소유의 권총을 눈에 띄게 해서 살인 사건에 애비가 관련이 있다는 오인을 유도하게 만드는 것이 주목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갑작스런 총알의 발사가 외부의 힘이 레이에게 위험을 경고하는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레이는 운명의 경고대로 더 이상 다가서지 말거나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발사된 총에만 집중한 나머지 애비의 권총은 확보하지만 물고기 밑에 놓여있는 비셔의 라이터는 찾아내지 못한다.

레이의 눈멂은 애비가 남편을 살해했다는 잘못된 추측을 낳게 하지만, 재미난 점은 애비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점이다.

 

a941ebcac4d6f68f0b7b76a78d3f7c0a_1575345389_3849.jpg
레이의 행동에 수상함을 느낀 애비가 남편의 사무실에 들렀을 때, 깨어진 유리창, 흩어진 서류들을 통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금고 앞에서 망치와 찌그러진 금고 다이얼을 본다.

애비의 추측은 이렇다. 레이가 밀린 주급을 받기 위해 남편의 사무실에 침입해서 금고를 부수는 중에 남편과 레이의 몸싸움이 있었다는 것.

 

애비가 망치를 발견하는 순간은 레이가 권총을 발견하는 정도만큼은 아니지만 급작스럽다.

금고 위에 있는 타올을 들어올리는 순간 둔탁한 금속 소리를 내며 애비의 발아래에 망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레이가 권총에 집중한 나머지 라이터를 보지 못하듯이, 애비도 망치에 집중한 나머지 라이터를 보지 못하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비셔가 살인의 결정적 증거인 라이터를 현장에 두고 오지만 그곳을 방문한 두 사람은 그것을 보지 못하고 권총과 망치에 의해 서로를 살인범으로 오해를 하게 되는 과정이다.

세 사람은 세 가지 금속 물질(라이터, 권총, 망치)을 앞에 두고 눈멂의 행동을 유사하게 반복하고 있는 점도 운명적인 원형 구조다.

 

앞서 레이가 마티의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갑작스런 총알의 발사가 외부의 경고라는 의미도 있다고 했다.

유사한 장면을 살펴보자.

a941ebcac4d6f68f0b7b76a78d3f7c0a_1575345441_4609.jpg

레이와 애비가 문 앞에서 말다툼 중에 흥분한 레이가 마티를 생매장시킨 것을 고백하는 부분이다.

레이의 고백이 끝나자마자 갑작스레 신문이 날아와 창문에 격렬하게 부딪힌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는 신문이 두 사람을 시각적으로 잘라버리는 것처럼 이 장면 이후 애비와 레이의 관계는 양분된다.

총알의 발사와 신문의 충돌은 전지적 존재가 영화에 개입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장면이다.

 

운명이나 신적인 존재가 개입하는 듯한 느낌은 레이가 마티를 생매장하러 가는 장면에 흘러나오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내용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국내 개봉 때 이 부분은 번역이 되지 않았지만 유심히 들어보면 기독교 근본주의와 관련된 내용이다.

라디오에서 전도사는 우주의 행성 직렬과 같은 하나님의 징조와 적그리스도에 대해 설교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풍기 이야기를 하다가 너무 샛길로 빠진 느낌이다.

다음 편에는 <블러드 심플>에서 선풍기가 전화기와 만났을 때, 어떤 효과를 불러일으키는지를 설명하겠다.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
0 Comments

Categ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