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체축일 aka 문신을 한 신부님 2019

더블피디 0 186

폴란드 하면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안제이 바이다, 아그네츠카 홀란드, 로만 폴란스키 등 감독의 이름이 우선 떠오른다. 폴란드 영화(인)가 빛나던 영화(榮華)의 순간을 추억하게 하면서 동시에 동시대 폴란드 영화(인)의 부재와 단절을 곱씹게 만드는 슬픈 일이다.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런 아쉬움을 한방에 날려버릴 새로운 폴란드 영화를 만난 것은 순전히 운 때문이었다.

<성체축일>은 내 의지로 고른 영화가 아니었다. 이 영화를 볼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고 친애하는 씨네스트 친구(응?) Umma55 님을 극장에서 만날 생각으로 아무 생각 없이 선택했던 영화였다. 세상 일이 대개 그렇듯, 정작 Umma55 님은 사정이 생겨 극장에 못 오셨고 보기 좋게 헛물만 켠 나만 혼자 아무런 사전 정보나 기대 없이 이 멋진 폴란드 영화를 보게 되는 행운을 누렸더랬다(좋은 영화와의 인연을 지어 주신 Umma55 님께 무한 감사! ㅎㅎ). 영화를 다 보고 나자 제일 먼저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이런 영화가 정식 개봉하기를 기대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겠지? 그런데...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정말 일어났지 뭐야!?

극장 개봉은 둘째치고 정식 수입 자체가 안 될 거라고 지레 포기하고 있었는데, 알토미디어(주)가 이 낯선 폴란드 영화를 수입/배급하기로 결정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을 때 나는 소년원에서 훔친 사제복을 입고 성직자 행세를 하게 된 비행 청년 다니엘(바르토시 비엘레니아)이 폴란드 시골 마을에서 일으킨 작은 기적이 바다 건너 한국에서도 일어난 거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 멋진 폴란드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함께 제92회 아카데미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부문의 최종 후보 5편 중 한 편으로 선정됐다. <성체축일>은 영화에 과문한 내가 내 마음대로 뽑은 부산국제영화제 베스트 10 중 넘버 원이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기뻤다.

거 봐, 내가 뭐랬어... 좋은 영화라고 그랬지? 너스레를 떨며 어쭙잖은 내 촉을 자랑하려고 이 글을 올리는 게 아니다.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의 자격으로, 흙 속의 진주 같은 영화를 찾아 수입/배급을 결정한 알토미디어(주)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고, <문신을 한 신부님>이라는 제목으로 2월 19일에 정식 개봉하는 이 멋진 폴란드 영화를 많은 분들에게 권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문신을 한 신부님>을 보면서 만만찮은 영화적 유산과 문화적 토양 위에서 피어난 폴란드 영화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해 보시길. ​

* 뱀다리

1) 저는 영화사 관계자도 아니고 알바생도 아닙니다. 부산영화제 때 <성체축일>을 보고 사랑에 빠진 관객입니다.


2) <문신을 한 신부님>은 CGV아트하우스 '2020년 아카데미 기획전' 상영작으로 선정되어 미리 만나보실 수 있다고 합니다.


3) 블로그 이웃이자 알토미디어(주)의 대표이신 박은주 님에게 '좋은 영화를 수입/배급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꼭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4) 수입/배급을 진행하는 알토미디어(주)에 너무 감사하지만, <성체축일>이라는 멋진 원제를 두고 왜 한글 제목을 <문신을 한 신부님>으로 바꾸었을까 의아했습니다. 알토미디어(주) 박은주 대표님이 "<성체축일>이 종교색이 너무 짙어서 <문신을 한 신부님>으로 바꾸고 신부님께 자막 감수 받아 2월 13일에 개봉합니다."라는 답글을 달아주셨네요. 감사합니다. 그래서 그랬구나 이해는 됐지만, 개인적으로 한글 개봉명이 영 마음에 안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작명이 어떻든 좋은 영화는 관객들에게 좋은 영화로 다가갈 거라 생각합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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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때 <성체축일>을 보고 쓴 메모입니다)

01. 성체축일ㅣ2019ㅣ얀 코마사ㅣ폴란드

아무 기대 없이 극장에 들어 섰다가 엄청난 충격에 휩싸인 채 극장을 나섰다. 우연히 얻어걸린 작품이었기에 소회가 남달랐다. 어떤 관객은 이 영화의 열린 결말이 모호하다거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해서 아쉽다는 평을 하셨다지만, 오히려 나는 그 점(격식을 깨고 폭발하는 감정의 에너지) 때문에 이 영화가 좋았다. 양파의 속처럼 겹겹이 쌓인 진실 속에서 종교, 구원, 위선, 용서에 대한 파격적 물음을 던지는 이 폴란드 영화는 서구 역사와 문화의 토대가 된 기독교 신앙이 어떤 구원과 속죄의 길을 찾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다. 소년원을 갓 출소한 비행 청년 다니엘(바르토스 비엘레니아)이 우연찮게 작은 마을에서 신부 행세를 하며 벌이는 대속(代贖) 행위는 관념적 고민에 매몰되지 않고 그 정념의 고통을 육신의 고통으로 육화(肉化)시키려는 절절한 몸부림이 되어 116분 러닝타임 전체를 묵직한 고해성사의 시간으로 만든다. 연출, 연기, 촬영, 편집, 음악 모두 깊이가 있고 생동감이 넘쳐서 좋았다. 1990년대 후반 폭발하던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 그 날 것의 에너지를 다시 보는 것 같았다.

- 2019년 10월 5일 10:00 <성체축일> (cgv 센텀시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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